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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연대란 이런 것이구나


현대차에 부품 납품하는 외국계 기업 직장 폐쇄에 금속노조 경주지부 소속 21개 사업장 공동 파업
등록 2010-03-18 12:00 수정 2020-05-03 04:26
전국금속노조 경주지부 조합원들이 3월8일 오후 경주역 광장에서 발레오 전장시스템스 코리아의 직장 폐쇄 철회를 촉구하는 총파업 결의대회를 가진 뒤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

전국금속노조 경주지부 조합원들이 3월8일 오후 경주역 광장에서 발레오 전장시스템스 코리아의 직장 폐쇄 철회를 촉구하는 총파업 결의대회를 가진 뒤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

옆 공장이 갑자기 문을 닫았으니, 당신보고 함께 연대 파업을 하자고 하면 할 수 있을까? 휴일 특근수당도 거부하자고 하면 할 수 있을까?

2600여 명의 노동자들은 “그렇다”라고 답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의 한 간부는 “이들이 구속될 각오까지 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 3월9일 금속노조 경북 경주지부는 산하 사업장 21곳의 공장을 세웠다. 사장들은 이날 금속노조 경주지부장 등 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경비·식당 아줌마까지 전 직원이 정규직

이들은 왜 다른 공장 문제에 ‘임금 깎이고, 구속될 각오’로 나섰을까? 같은 금속노조 사업장인 ‘발레오 전장시스템 코리아’가 갑자기 공장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파업에 나선 최민석 금속노조 경주지부 선전부장은 “발레오는 이 지역 기업 가운데 고용 효과도 크고, 임금이나 노동조건에서 상징적인 곳”이라고 설명했다.

발레오 전장시스템 코리아는 ‘비정규직이 없는 공장’이다. 식당에서 일하든 경비일을 하든 임직원 875명 전원이 정규직이다. 하루 ‘일당’도 같다. 직무에 따른 수당은 다르지만, 공장 안에선 지게차를 운전하든 생산라인에서 일하든 기본적인 ‘일당’은 같다.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에 시동모터·발전기 등을 납품한다.

하지만 회사는 지난 2월 경비 업무를 외주화하겠다고 나섰다. 노조 쪽은 “지난해 조합원 복지까지 양보하면서 식당·경비 등 4개 업무의 아웃소싱을 안 하기로 회사 쪽과 합의했는데, 회사가 이를 어겼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회사는 지난 2월16일 설 연휴가 끝난 직후 직장 폐쇄를 단행했다. 조합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직장 폐쇄 사실을 알린 뒤, 용역 경비 250여 명을 투입해 노조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회사 쪽은 2009년 80억원에 이어 올해도 적자가 예상돼 회생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공장 청산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배재식 발레오노조 사무장은 “벌써 10년째 계속되는 싸움”이라며 “사장이 바뀔 때마다 공장 외주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노조는 경비 업무부터 외주화되기 시작하면, 생산 업무도 차례로 외주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외주화로 사내하청 노동자가 되면, 임금과 복지 등 노동조건은 후퇴한다. 배 사무장은 “비정규직이 안 되도록 그동안 지켜낸 게 참 힘들었다”고 한숨을 쉬며 “식당 노동자도 다같은 조합원이니 (우리가) 용납이 안 된다. 조합원들은 결국 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장 폐쇄가 20여 일째 계속되자, 경주지부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도 600여 명의 발레오 조합원을 돕기 위해 나섰다. 3월6∼7일에는 휴일근로를 거부했고, 8일에는 4시간 파업, 9일에는 전면 파업을 했다.

조건 더 열악한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도 동참

발레오보다 임금 등 노동조건이 열악한 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도 함께했다. 개별 사업장 문제로 지역 지부 전체가 전면 파업을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지난 3월10일 발레오 회사 쪽은 노조와 대화에 나섰지만, 진전은 없었다. 12일에는 금속노조 간부 5천여 명이 경주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최민석 선전부장은 “노동자들이 높은 곳(노동조건이 좋은 사업장)을 보고 자신의 사업장도 따라가고 싶은데, 지금 높은 곳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라며 “조합원들은 모두가 하향 조정되는 것을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 기자 한겨레 사회정책팀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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